Nam Kwan

남관, 밤 율동, oil on canvas,185x91cm,1981

남관 10주기 기념전​

한국 추상화의 선각자 The Forerunner of the Korean Abstract Painting

Oil Paintings 1970-1990

남관은 1935년 일본 동경 태평양미술학교 졸업하고, 일본에서의 활동 시기가 귀국 후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인 그의 작가적 형성의 배경은 일본 화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동경의 유수한 회원전에 출품했고 일련의 수상경력까지 지니고 있다. 남관이 일본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 것은 1955년 초의 일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1968년까지 머문다.

남관은 1966년에 유서 깊은 남불의 망통시에서 열리는 '망톤회화비엔날' 에서 1등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같은 해의 이 비엔날에서 명예상은 안토니 파티에스 (Antoni Tapies), 시(市)대상에는 폴리아코프(Serge Poliakoff)가 각각 차지했다. 그리고 1968년에는 그 비엔날에서의 '명예 초대작가'로서 일종의 고별출품을 마지막으로 귀국의 길에 오른다. 물론 이 밖에도 파리 뿐만이 아닌, 유럽 각 지역에서의 권위있는 초대전에 한해도 거를 틈없이 초대되었고, 1963년의 첫 개인전을 시발점으로 그 후 귀국시 까지 해마다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을 갖게됐다. 어느 대담에서 남관은 자신의 파리정착 초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나는 1955년 파리에 와서 정착했다. 그것은 서양미술을 직접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거을 또 하나의 윤리적, 지적, 정신적, 변혁의 계기로 삼았다."

남관의 회화는 '인체=얼굴=마스크(가면)'의 이미지가 그의 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조형적 어휘로 등장하게 되며 그와 같은 인체는 상형문자화 되고 또는 기호가 되기도 했다. '마스크'와 '상형문자'의 형태는 1960년대 말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나, 남관 자신의 말에 의하면 이들 형태는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즉 '갑골(甲骨)문자 같은 것을 더 변형시키면 마스크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다.

남관이 세상 떠난 후 1주기 기념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으며 5주기는 현대화랑 그리고 10주기 기념전은  Juliana Gallery에서 열였다.

남관, 흰 공간속, oil on canvas,163x130cm,1978-9